베이글에 진심인 여행기자의 서울 베이글 투어 5
승인 2021. 09. 09 07:40뉴욕에 다녀온 후 한동안 베이글을 앓았다.
동글동글 빵빵한 어니언 베이글을
반으로 쩍 갈라 굽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은 크림치즈를 두툼하게
바른, '최애' 조합을 잊지 못해서.
요즘도 베이글을 아주 자주 입에 달고 사는
여행 기자의 서울 베이글 로드.
베이글은 뉴욕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사실 베이글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 동유럽(보다 구체적으로는 폴란드) 유대인의 주식이었다는 설이 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이들 유대인이 대거 북미로 이주하면서 특히 뉴욕과 몬트리올 등 캐나다와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베이글 문화가 자연스럽게 퍼졌다.
베이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단촐하다. 밀가루, 물, 소금과 이스트로만 반죽해 굽는다.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베이글은 당시에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 북미 주요 도시에서 아침식사 메뉴로 흥했다. 1900년대 초 뉴욕에는 베이글 제빵사들의 연합이 생길 정도였으니,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베이글과 커피'가 떠오르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1960년대 초만해도 미국에서는 베이글을 수제로 빚었다. 하지만 이후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베이글 가게들도 타격을 입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마다의 레시피로 정성껏 빚은 베이글로 아침을 준비하는 베이글 가게들은 수많은 미국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다. 참고로 베이글은 거칠고 단단하며 다소 퍽퍽하다고 느껴지는 식감이 특징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베이글 가게에서는 베이글 다운 식감을 확인할 수 있다.
뉴욕을 앓는 날이면
에브리띵 베이글
서울 베이글 투어는 에브리띵 베이글(Everything Bagels)에서 비롯됐다. 안온한 연희동의 아침, 에브리띵 베이글 앞은 분주하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따뜻하게 구운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부터 기꺼이 줄을 선다.
에브리띵 베이글의 베이글은 쫀쫀한 밀도의 식감이 단연 인상적이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장님은 한국에 와 한동안 극심한 베이글 앓이를 겪었다고 한다. 다시 뉴욕으로 가 베이글 만드는 법을 배워왔고, 뉴욕 브루클린 어느 작은 골목길에서 만날 법한 분위기의 베이글 가게를 연희동에 차렸다. 신선한 베이글을 전하지 못할까 마음에 걸려 온라인 배송도 여전히 고민하는 걸 보니, 그는 베이글에 진심이다.
메뉴는 오직 베이글과 크림치즈뿐이다. 아오리사과나 당근 크림치즈, 바나나 베이글 등 제철 재료로 만드는 한정 메뉴부터 블랙데이, 발렌타인데이, 할로윈데이 등 특별한 날에만 선보이는 메뉴들도 재밌다. 공식적으로 영업시간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지만 베이글은 매일 빠르게 매진되므로 안전하게 오후 4시 이전에 방문하길 권한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길 29
새콤짭쪼름 발효 베이글
SF 베이글
연희동에 에브리띵 베이글이 있다면, 아랫동네 연남동에는 SF 베이글(San Francisco bagels)이 있다. 연남동 굽이굽이 작은 골목길 안 코너에 위치해 있다. 동글동글한 베이글을 쌓아놓은 입간판이 눈에 띄면 SF 베이글 가게가 맞다.
SF 베이글은 이스트나 달걀, 우유를 넣지 않고 19시간 동안 저온에서 천연 발효 과정을 거친 사워도우 반죽을 이용해 베이글을 빚는다. 호밀과 물로 배양한 사워도우 발효종은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빵 반죽법이기도 하다. 사워도우 반죽은 시큼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 소금을 뿌린 소금 베이글과 새콤짭쪼름한 궁합이 의외로 좋다. 크림치즈 역시 매일 신선한 우유를 저온 발효시켜 올리브나 갈릭허니, 쪽파, 무화과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선보인다. 베이글 외에도 쿠키나 당근 케이크, 스콘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46길 29
우리 잠시 브루클린 다녀올까?
브루클린 베이글 카페
브루클린 베이글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페퍼로니 피자 베이글이다. 반을 가른 베이글 위에 토마토 소스와 모짜렐라 치즈, 페퍼로니를 올려 구운 피자 베이글은 작지만 든든하다. 소시지와 달걀, 아보카도, 토마토 등을 넣은 샌드위치 메뉴는 칼로리 높은 '미국스러운 맛'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샌드위치 속 적당히 익힌 반숙 달걀이 한수로 꼽힌다. 베이글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살짝 구워 플레인 크림치즈만 올려 먹어보자. 이곳 베이글은 두께가 다소 얇은 편인데 적당히 단단한 식감에 쫀쫀함이 살아 있다.
브루클린 베이글 카페는 미국스러운 맛뿐만 아니라 해방촌이라는 위치 덕분에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가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베이글을 한입 앙 물면 잠시 브루클린으로 이동. 기존에도 테이블 서너개 정도만 배치할 정도로 작은 매장이지만 코로나19로 '포장'만 가능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배달 앱으로도 주문 가능하다.
주소: 서울 용산구 신흥로 44
브런치로 제대로 즐기는 베이글
카페 토다
카페 토다는 베이글 카페 중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베이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갤러리 같은 모던한 인테리어와 야외 테라스를 갖춰 주말 브런치를 위해 찾는 이들이 상당하다. 다만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베이글은 2,500원, 크림치즈는 이보다 비싼 2,900원이다. 크림치즈 가격이 상당한 편이지만 그만큼 차고 넘치는 양으로 보답한다. 커피와 베이글, 샐러드 또는 수프를 포함한 세트 메뉴가 합리적이다. 베이글에 연어를 올린 샐러드까지 함께 먹으면 생각보다 금세 포만감이 전해진다. 베이글에 따라 잘 어울리는 크림치즈 조합을 추천해주기도 하니 참고하시길.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카페 '나무사이로'의 원두로 내린 커피는 이곳 베이글의 품격을 한 단계 올린 수준이다.
주소: 서울 서초구 성촌6길 39
장모님 손맛이 담긴 베이글
마더린더 베이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맞나 보다. 마더린더 베이글은 뉴욕에서 오랫동안 유대인 정통 베이글 가게를 운영해 온 장모님이 사위에게 물려준 레시피로 베이글을 빚는다.
반죽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초고온 화덕 오븐에서 높은 온도로 짧은 시간 구워내는 것이 특징. 대형 쇼케이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과 크림치즈가 가득하다. 베이글 특유의 거친 식감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다. 훈제 연어를 넣은 샌드위치 메뉴가 인기며,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5길 5
글 ·사진 손고은 기자